맞춤법을 현대 것으로 고침


금강기행

(소화 18년 8월 1일 ~ 7일)

계명 김준구 짓고 씀

1943년 8월 15일


8월 1일

오후 내금강 역에 다다르니 소낙비에 눈도 뜨지 못한다. 등대하고 있는 버스에 몸을 맡기니 수십 분 후 닿는(다다른) 곳은 장안사 유일문 앞이다. 하숙에 들어가 앉으니 가만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제야 천하명산 금강을 탐승하게 되나 보다."

그러나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저녁을 맛있게 마친 후 C와 장안사 구경을 나섰다. 유일문에 한 발을 들여 놓으니 계곡에 노래 소리. 속세에 더럽힌 귀를 씻어 주는 듯. 길옆에 서 있는 울창한 수목들은 의기충천하는 기상이 대공을 찌르는 듯. 흰 바위, 푸른 나무, 맑은 물. 그 위에 걸쳐 놓은 다리(OO 교)의 조화되는 색채. 속세를 멀리 떠나 선경에 거니는 듯.



2일

자리에 누어 창 밖의 비소리를 원망하면서 개이기를 기원.
오정이 가까워서 해님이 살짝 구름 사이로 웃어 주기에 부랴부랴 점심을 싸 가지고 우장(비옷)을 갖추어 명경대 길을 떠났다. 얼마 안가서 비는 오락가락. 그러나 일자 관계로 기어이 오늘의 코스를 단행키로 하고 올라가다.
간밤 비에 외나무다리 2, 3개의 곳이 유실되었다고 못 가고 돌아 오는 사람을 만났다. 일행 3인이 계곡을 거슬러 또 올라간다. 과연 다리가 없었으나 발을 벗고 물에 들어서서 건너다가 바위를 타고 건너 뛰어가면서 명경대에 다다랐다. 황류담을 굽어보며 큰 바위에 올라 앉아 「백두산에서 뻗친 줄기」란 노래를 불렀다.
그곳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나 일행 4인이 되어 돌아오는 길. 계곡을 건너 뛰다가 도꾜에 있는 화가란 일본 사람은 실족하여 물에 빠져서 웃지 못할 희극 일 막을 연출한 것도 추억의 한 토막이 되리라. 망군대는 못 가고 말았다. 내일의 준비로 집신 1 켜레(1.80) 매입.



3일

날이 개었다. 일동은 웃음으로 길을 떠난다. 16 킬로미터의 코스다.
어제 약속한 2인과 일행 4인이 유일문에서 하직하고 장안사를 왼편으로 다시 한번 바라보고 돌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돌 한 조각조각이 평범한 것이 없고 바위마다 절묘하다. 기봉을 대할 때마다 감탄성 뿐. 우리들이 선인이나 된 듯 산 허리에 감도는 흰 구름. 골짜기에서 솟아나오는 운애. 비가 온 뒤 한층 농후해진 수목들의 청신한 빛. 흰 돌들. 아 -. 「장하고 장하다」 노래가 절로 절로 흘러 나온다. 공중누각처럼 솟아 있는 보덕굴(?) 금강문 등을 지나 공중에 기봉과 골자기에 진주담선암 연주암 승경을 거쳐 만폭동 앞 찻집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올라 마하연으로-. 단청 채색이 아름답다. 다리를 쉬고 점심을 먹고 청계수에 세수하니 연수의 감촉은 진세의 물과는 판이하다. 일년만 산중에 유하였으면 미녀선인이 될 듯싶다. 이 강산, 이 녹수를 버리고 어이 가리...
다리는 아프나 비로봉에 오를 각오이니 용기를 내어라. 창공에 솟은 개골아, 과연 개골산이란 말이 적당한 너의 이름이다.
마른 가지 우뚝 서있는 모양. 운치를 돋운다. 쇠다리를 기어 오르며 행진한다. 층층대를 굽어 올라 고인을 연상하며 우거진 삼림 속으로 기어든다. 골자기는 멀어지고 석산 만 이곳 저곳 우뚝우뚝 봉오리, 봉오리. 만물상만이 만물상이 아니라 금강의 만이천봉이 봉마다 만물상이로다.
어느덧 눈 아래(안하) 멀리 가까이 수많은 흰 봉을 답파하고 올라섰는가- 하니 하늘에나 오른 듯. 의기현앙하다. 한 골자기 돌아드니 왼편에 봉오리 하나. 자모(어머니)가 유아를 안고 서 있는 모양 그대로 조각인 듯 틀림없는 신의 예술품이다. 자모관음이라 불러주고 카메라 못 가졌음을 한 하였다. 기암괴석 나려다 보며 영랑봉을 감돌아 올라가니 죽어 넘어진 나무도 대자연 그대로 멋이 듯는다.
인조의 정원보다 아름답게 놓여 있는 암석. 수목의 배치! 올라가니 고산식물도 많이 있다. 고원을 걸어가니 사면 골자기에 구름이 피어올라 순식간에 안하 산봉들을 휩싸 안고 우뚝이 남은 비로봉 만이 구름 위에 솟아 있다. 십분이나 걸었을까? 정상에 도착하니 오- 장엄한 일순-. 비로봉 정복의 쾌감! 이곳에는 풀잎 한 포기도 없다. 석산이다. 안개는 사면에서 몰려와 원경이 안 보이니 유감이다. 다리를 쉬고 목을 축이고 산장에 가서 여장을 풀었다. 시멘트 바닥에 담요를 깔고 덮고 누으니 피로한 몸이 천근인 듯 만근인 듯.



(4일)

「일출보러 가려면 빨리 일어나요!」라고 떠들썩한 소리에 잠을 깨니 아직 회색 빛 짙은 이른 새벽 4시 반. 일어나기 싫었으나 용기를 내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담요를 가지고 산정으로 뛰어 오른다. 간밤에 안개는 골자기로 몰려간 듯. 다리는 작일(어제)보다 더 아프다. 산장 숙박자 백 여명이 산에 올라서니 가까운 산봉들이 그림과 같이 안개 옷을 벗고 고개 들고 올라온다. 검푸른 산색. 바람처럼 골자기로 솜덩이 같은 흰 구름 한 뭉치 내려가는 것은 그림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꿈에 보는 무릉도원의 현실화한 것이라고 할까? 서편 산과 먼 지평선은 하늘 구름과 연하여 일망무제하고, 하늘 이곳저곳서 점점이 피어오르는 오색구름은 신이 그리시는 수채화인 듯. 동편 하늘 끝 바다인지 구름인지 연해 있는 곳 점점 홍조가 뛰노는 듯 주홍으로 물들더니 구름사이로 찬란한 광채가 빛나매 일동은 눈 부시는 그 순간 만세를 불렀다. 환희를 한 아름 안고 산장에 돌아와 조반을 마친 후 우리 일행 4인은 외금강로를 접어들다. 어제(작일)와 정반대의 코스. 비로봉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마의태자릉 전에 배례하니 천년 전 옛 자취 감개가 무량하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어디 간고 고인의 거닐든 길인가 하니 의의 깊은 걸음인 듯 고요히 옛 발자취 찾아보고 싶은 심정... 아래 시 참조
산봉을 처다 볼 겨를도 없이 층암절벽을 줄달음으로 내려가다. 다람쥐도 수없이 만나면서...
비사문에서 청풍(맑은 바람)을 마음껏 마시면서 다리를 쉬어 가지고 절벽에 달린 쇠다리를 조심조심 내려오다. 한없이 내려오다가 산을 처다 보니 내금강의 여성적 미에 비하면 웅대한 산용과 산색이 확실히 남성적이다. 구름은 산곡에서 피어오르는데 천인절벽에 내려치는 폭포소리에 발을 멈추니 이곳이 천하절승 구룡연인 듯 장(길이)이 삼백척이라고. 백룡이 굼틀 굼틀 승천하는 듯 수만의 진주구슬로 만든 수렴을 흔들어 드리운 듯 장엄한 그 소리 구룡연의 짙은 물빛 청룡이 살아 굼틀거리고 숨어있는 듯 가까이 서니 수포의 비말에 더위도 간 곳 없고 심중에 백팔번뇌를 다 잊은 듯.

백룡은 굼틀굼틀 하늘가에 오르건만
청룡은 어이하야 물 속에만 잠겼는고
백룡도 청룡을 못 잊어 울며 울며 오르도다
비폭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으니 밥맛이 유별하다. 사진을 박고 한 시간 여 쉬다가 떠나기 싫은 발길을 돌려 떠난다.
구룡아 잘 있거라 다시 보자 비로봉아
지상선경 너의 곁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속세에 젖은 몸이라 마음 두고 몸만 가노라

하직하고 내려간다... 신계사에서 보리수 열매를 만져보다가 극락현에 올라 다시 온정리로 내려오다.



8월 5일

점심을 싸 들고 일찍 대절차를 얻어 만물상으로 질주하기 약 30분! 내려서 도보로 3 km 여에 삼선암이 보이고 귀면암, 등등 만물상이 눈 앞에 전개. 삼선암 상에 좌정하고 앉으니 오만물 신(?)만물이 병풍을 두른 듯이 창공에 용립하여 있다. 작일 재작일 만났던 탐승객들의 얼굴도 보인다....
돌아 나와서 차를 기다리기 약 2 시간. 잣 먹는 맛도 저 바리기는 아깝다. 반가운 차의 경적. 달려가서 타고 고성 읍을 지나 바로 해금강으로 직행하니 오후 5시경. 멀리 하늘가에 보이는 돛대. 그립던 바다. 동경의 동해. 멀리 보이는 수평선. 무한한 환희를 느꼈다. 일행이 지기가 아닌 고로 노래 한번 못 부르고 못 들음이 한이다.
사장에 수영객들, 바다 가운데 졸고 있는 범선 수척. 시요 그림이다.
배 한 척이 와서 우리 일행을 싣고 맑은 물 위로 미끄러진다. 물밑을 드려다 보니 너울거리는 해조. 높고 얕은 바위! 지상에 금강이 해상에만 있음이 아니라 해저에도 금강이 잠들어 있음을 나는 보았다. 물이 깊어 안 보이는 저 해저에는 용궁도 있겠지. 해만물, 송도! 등등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고 흰 섬들을 바라보며 돌아간다.
낙조가 서천(서쪽 하늘)을 곱게 물 드릴 때. 갈매기는 물을 차고 멀리 바닷가에 사라지는 때 나는 흰 사장(모래밭)을 헤치고 흰 조개를 많이 주었다. 마중 온 차를 타고 여사(여관)에 돌아와 목탁 몇 개를 사 가지고 온천에서 목욕하고 자리에 들었다.



8월 6일

외금강 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석왕사로! 오후 5시에 도착. 수직으로 서 있는 아름드리 청송이 울창하여 백주(대낮)에도 일광(햇볕)을 볼 수 없는 유적한 곳. 오백년 전 그 옛날 무학승을 연상케 한다. 소승에게 인도되어 금강경 판목 등을 구경하고, 귀로에 약수터에서 탄산수를 마시고 여사에 돌아오다.



8월 7일

10시경 발차로 귀경

금강영봉 찾아가니 구름밖에 선경이요
선경 사이 흰 계곡 계곡에는 벽담 비폭
그 선경 버리고서 내 어이 돌아 온고
개골 개골이라 너의 이름 옛 듣고 이제 보니
과연 만중 운무 속에 백골만 묻혔구나
백골 위엔 절개 높은 청송 서 있구야
벽계수 벽계수라드니 개골산은 계곡마다
뛰고 넘쳐 푸르르니 네 이름이 벽계수라
흘러 흘러 옛 물은 아득한 곳 갔건마는
개골산은 변치 않고 우뚝하니 서서 있네
비로봉에 일출 보기와 보덕암 목탁소리
구룡연의 위관이며 만물상의 장관이며
해금강의 묘(渺?)망과 해저의 신비경과
일만이천봉 기봉들의 신선 같은 그 맵시며
그림 같은 그 산용은 선녀인양 꿈속인 냥
모든 신비 감추고서 영원히 말이 없네
불후의 명산 금강산아! 우리의 자랑아!

1943년 8월 12일 계명

荒凉麻衣太子陵 황량마의태자릉
-황량한 마의태자릉-

風磨雨洗畿星霜 풍마우세기성상
-비바람에 씻기고 닳기 그 몇 해인가.-

毘盧峯下孤影沈(長) 비로봉하고영침(장)
-비로봉 아래에 외로운 그림자만 잠겨있고(그림자가 길고)-

萬古懷恨使人愁 만고회한사인수
-오랜세월 품어온 한은 사람들을 슬프게하네-

(愚人不禁懷古恨) (우인불금회고한)
-어리석은 뒷사람들만이 옛일의 한스러움을 잊지 못하네.- 했다가 고침

8월 15일 계명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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