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 관광

Angkor Thom, Cambodia - 3월 18일(목요일)

문장 중에 이렇게 표기된 부분을 클릭하면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음

앙코르왕조의 마지막 도읍지인 앙코르 톰은 '커다란 도시'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큰 성곽도시이다. 이곳에는 왕궁은 물론, 종교 건물과 관청 건물도 있었던 앙코르 제국의 중심지였다. 앙코르 톰은 동일한 시기에 존재한 유럽의 어떠한 도시보다도 큰 도시였고, 인구도 많았는데 거의 100만에 이르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성내의 왕궁과 사람이 살았던 건축물들은 주로 목조 건물이었기 때문에 거의 다 썩어 없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석조물들이 과거의 웅장했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목조 건물들의 구조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사서에 의하면 원나라의 사신 주달관이 유일하게 그 당시의 앙코르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 기록을 보면 앙코르 톰의 웅장함을 잘 알 수 있다.

"왕궁의 중앙에는 황금탑 바이욘이 우뚝 섰고, 주변은 12개가 넘는 작은 탑들과 수백 개의 돌로 만든 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두 마리의 황금사자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황금 다리가 동쪽으로 놓여 있고, 다른 쪽에는 여덟 개의 황금 부처가 돌로 된 방을 따라 늘어섰다. 청동으로 된 황금 탑(바푸온)의 북쪽에는 바이욘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는, 밑에 10개도 넘는 방이 있는 탑(피미아나까스)이 있다. 이 탑의 북쪽 1/4리 쯤에 왕이 기거하는 왕궁이 있다. 왕실 위에는 또 다른 황금탑이 있으며 이 탑들을 보고 외국에서 온 상인들마다 참 부유하고도 장엄한 앙코르제국이라며 감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웅장하고 위대한 건축을 이루었던 앙코르 제국도 15세기에 갑자기 이 지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몇 차례 앙코르 제국의 위업을 재건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자야바르만 7세 이후로 캄보디아에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구조

앙코르 톰은 각 변이 약 3 km인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라테라이트로 쌓은 성벽의 높이는 약 8 m, 내부 넓이는 145.8 ha(약 44만 2천 평)에 달한다. 성벽의 바깥에는 폭 100 m의 수로를 파서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했으며, 정 사방에 있는 출입구와 이어지는 네 길은 바이욘과 만나지만, 승리의 문이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동쪽 출입구가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 왕 테라스로 이어지는 긴 회랑과 만나도록 되어 있다. 사람의 얼굴을 사방에 새긴 높은 고푸라(성 입구에 세우는 커다란 탑이나 구조물)가 외곽을 사방으로 둘러싼 성벽들의 중앙에 각각 위치해 있으며, 쁘라삿 쯔롱이라고 부르는 작은 사원이 이 성벽의 코너마다 세워져 있다.

성안에는 25m 폭으로 성토가 된 도로가 성을 빙 돌며 만들어져 있다. 각 성문으로 통하는 5개의 긴 도로 양쪽에는 각각 54개의 석상들이 서 있는데, 입구를 들어갈 때를 기준으로 악신들이 왼쪽에 선신들이 오른쪽에 서 있다. 악신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고, 머리에 무사들이 하는 장식을 두르고 있는 반면, 선신들은 아몬드같이 생긴 눈과 원추형으로 감아 올린 머리를 한 평화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석상들의 얼굴은 복제품인 경우가 많은데, 몇몇은 도난 당했고, 몇몇은 문화재 관리국에서 보관하고 있다. 각 도로가 시작하는 지점에는 큰 뱀인 나가(Naga)가 9개의 머리를 부채처럼 펴고 있고, 이 나가를 도로 양쪽의 선신과 악신이 무릎 위에 받치며, 긴 난간을 이루고 있다. 참고로 악신의 머리 모양은 바이욘에 가면 외벽의 벽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씨암(태국)족 침입자의 투구모양과 많이 닮았다. 아마 앙코르 제국의 조각가들이 악신을 묘사하면서 씨암족의 모습을 인용한 것 같다.

5개의 고푸라는 캄보디아 유적의 대표적인 것으로, 사암으로 만든 각각의 탑은 23 m의 높이로 솟아있고 4개의 얼굴로 둘러싸여 사방을 보고 있다. 각 성문의 아래쪽 반은 머리가 3개인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기둥을 이루고 있는 코는 연꽃을 잡고 있다. 힌두의 신인 '인드라'가 그의 양쪽에 동료들과 함께 코끼리의 중앙에 앉아 있으며, 밑으로 왼쪽 밑 손(힌두신은 팔이 많다)에 번개를 쥐고 있다. 탑 중앙에 서서 보면 양쪽에 파수대를 볼 수도 있고, 몇몇 고푸라에서는 가로지름 막대로 쓰였던 나무들을 볼 수도 있다. 탑들을 돌다 보면 크메르 예술을 대표하는 돌출받침형(Corbel) 아치를 볼 수 있다.

앙코르 톰의 상징적 의미

앙코르 톰에는 동쪽에 두개, 그리고 나머지 방향에 각각 한 개씩 등 모두 다섯 개의 성문이 있는데, 현재 보통 관광객이 처음 보게되는 성문은 남쪽 문이다. 그리고 앙코르 톰은 중앙 축을 중심으로 4구역으로 나뉘어 불교 우주론의 소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바이욘 사원은 하늘과 땅의 연결을 상징한다. 앙코르 톰을 둘러싼 사면의 성곽은 우주를 둘러싼 벽, 혹은 메루산을 둘러싼 산맥을 의미하며, 지금은 말라버린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은 머리 3개의 코끼리 위에 올라탄 힌두신 인드라에 의하여 확실시된다. 위에서 언급한 고푸라로 들어가는 입구의 길 양쪽에 있는 나가(Naga : 머리가 일곱 달린 큰 뱀-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할 때 나쁜 짐승으로부터 그를 지켰으며, 머리를 부채처럼 활짝 펴서 비로부터 부처를 보호했는데, 이러한 보호의 개념 때문에 사원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여겨져, 사원입구부터 세우는 것이 크메르 건축의 일반적인 특징이다)를 들고 선 선신과 악신은 힌두의 창조설화에 나오는 유액의 바다 휘젓기(Churning of the Ocean of Milk, 乳海攪拌)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머리 3개 달린 코끼리도 이때 창조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 의하면 이것들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합하는 무지개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이 길을 따라서 지나갈 때 인간세계의 존재에서 천상의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남문은 앙코르 건축에서도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흔히 이런 성벽이나 벽 중간에 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를 탑처럼 쌓아올렸는데, 이것을 고푸라라고 한다. 앙코르의 대부분의 건축에서 이 고푸라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중앙의 통로들은 탑처럼 쌓아올려 벽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앙코르 톰의 고푸라는 특별히 4면상(面象)을 가진 탑(?)을 받치고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4면상은 바이욘에 들어가면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이 4면상의 얼굴의 주인공은 자야바르만 7세이며 동시에 자신을 동일시한 아발로기데스바라(관세음보살)이다.

이 고푸라와 길 양쪽의 석상은 불교문서와 크메르 비문에 의한 가장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인드라가 악마들에 기적적으로 승리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도 한다. 석상들은 선신과 악신이 아니라 약싸(yaksa)와 악마들의 두 족속들이며, 이들이 앞으로 다가올 갑작스런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키고 서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도시 자체는 제국의 중앙에 위치한 Tavatimsa heaven(힌두교에 나오는 천상계의 한 종류)의 인드라를 나타내는 것이다.

앙코르 톰 남문을 통해 숲이 무성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바이욘 사원이 나오고 근처에 바푸온 사원, 왕궁, 코끼리 테라스, 피미아나까스 등 의 유적지가 있다. 앙코르 톰의 거대한 성벽과 그 안의 중심사원인 바이욘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그 안의 다른 유적지들은 그 전에 이미 만들어졌던 것이다.
자료원: 트래블 게릴라


앙코르 톰 입구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는 코끼리
둘이 탈 수 있다.


앙코르 톰 남문 입구의 해자 위의 다리


해자 위의 다리의 난간 역할을 하는 나가뱀의 몸통을 잡고 있는 54개의 선신
(들어가면서 오른 쪽)
도굴되어 머리가 없는 것과 재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앙코르 톰 남문 입구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다리에는 양쪽에 각각 54 개의 힘센 부처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자리하고 있고 다리밑을 흐르는 물은 현세와 천상을 구별하는 경계선처럼 고요하다. 커다란 문이 보인다. 그리고 사방을 바라보며 중생의 고뇌를 헤아리는 부처의 얼굴. 바로 대승불교 신봉자였던 자야바르만 7세의 의해 건축된 앙코르 톰의 얼굴이다.


해자의 난간 역할을 하는 54개의 악신(들어가면서 왼 쪽)
두상이 하얀 것은 도굴된 것을 재생한 것임


악신의 두상


머리가 7 개인 나가(naga)뱀의 머리


남문 입구의 사면상 탑


해자


나가뱀의 꼬리 부분에 있는 선신


남문 입구 안쪽에서 본 사면상


남문 안쪽에 있는 머리가 3인 코끼리 상

앙코르 톰(Angkor Thom)은 앙코르 와트와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앙코르 와트에서 북쪽으로 1.5 km 떨어져 있다. 한변이 3 km의 정사각형 모양인 앙코르 톰은 높이 8 m의 붉은 흙인 라테라이트성벽과 너비 약 10 m의 수로로 둘러 싸여 있다. 이로서 앙코르 톰이 성곽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방어적 개념의 건축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앙코르 톰은 "큰성" "큰 도시"라는 말이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앙코르 톰의 북쪽에는 왕궁이 자리잡고 있고, 그 중앙의 수로에 걸쳐서 바이욘 사원이 건립되었다. 바이욘 사원에서 동서와 남북으로 뚫린 두 개의 도로에 의해 도시가 4등분 된다. 북대문, 서대문, 님대문을 갖추고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사자의 문이 있다. 당시 이곳을 여행한 중국인의 기록에 의하면 도성 입구의 문지기가 죄인과 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앙코르 톰은 12세기 말-13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는 유일한 불교건축이다. 특히 바이욘(Bayon)에 있는 200여 개의 얼굴은 부처의 얼굴이기도 하고,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기도 하다고 전해진다.

앙코르왕조의 마지막 도읍지인 앙코르 톰은 말 그대로 큰 성곽도시로 왕궁은 물론, 종교 건물과 관청 건물도 있었던 앙코르 제국의 중심지였다. 앙코르 톰은 동일한 시기 유럽의 어떠한 도시보다도 큰 도시였고, 인구도 많았는데 거의 100만에 이르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산이 거의 없는 캄보디아에서는 방어가 무척이나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평지에 요새와 같은 왕국을 지으려면 반드시 방어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요소를 갗추어여만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석조건물이 요구되었을 것이고 왕궁은 그 자체가 요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또 해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것은 단순히 군사적 개념의 기능만 한 것이 아니라 용수기에 물을 저장하는 기능도 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성내의 왕궁과 사람이 살았던 건축물들은 주로 목조 건물이었으나 거의 다 썩어 없어져 버렸다. 남아있는 석조물들도 많이 파손되어 남아 있지만 그것으로도 우리는 과거의 웅장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청동으로 된 황금 탑(바푸온)의 북쪽에는 바이욘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는 밑에 10개도 넘는 방이 있는 탑(피메나카스)이 있다. 이 탑의 북쪽 1/4리 쯤에 왕이 기거하는 왕궁이 있다. 왕실 위에는 또 다른 황금탑이 있으며 이 탑들을 보고 외국에서 온 상인들마다 참 부유하고도 장엄한 앙코르제국이라며 감탄하였다."

양코르 유적군에 대한 관광정보는 주 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을 참조하라.


다 음 | 이 전 | 닫 기
0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참고: 이런 색으로 쓴 글은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