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 관광

바이욘(Bayon) 사원, Cambodia - 3월 18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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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욘(Bayon) 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는 사원으로서 앙코르 톰을 건축한 자야바르만 7세가 건축한 사원이다. 사원의 모양은 거대한 바위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앙코르 왓 유적군중에서 우물을 갖추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면에 조각된 관세음보살상인데 이는 자야바르만7세를 나타낸다고 한다. 바욘은 전체적으로는 크고 작은 약 50여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앙코르 왓의 유적지가 대부분 힌두교를 바탕으로 한 신화의 내용을 주로 전달하고자 부조로 나타나는데 비해 이곳은 당시의 크레인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전쟁을 위주로 하여 조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추정하건대 아마도 당시의 왕이었던 자야바르만7세가 힌두교보다는 불교를 더욱 신봉하는데서 기인한 듯 싶다.바이욘 사원은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에 지어진 불교사원이다. 당시의 왕이었던 자야바르만7세는 캄보디아 최초로 힌두교를 멀리하고 대승불교(호국불교)를 가지고 왔는데 이는 스스로 참선을 통한 자기해탈의 목적을 얻기 위한 소승불교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즉 나라를 구하기 위한 불교로서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야바르만7세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빈민구제시설을 설치하는 등 여러 사원들을 건립하였다. 그러한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자야바르만7세는 왕을 계승할 적통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신분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왕권을 계승하다 보니 정통성의 왕권이 아닌, 즉 힌두교가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계급질서보다는 자연스럽게 백성을 대상으로 하여 직접 마주하는 대승불교를 선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불교의 관세음보살상으로 자칭하면서 대승불교를 권장하였다고 한다. 그런 배경이 그의 재임중에 많은 사원을 건축하게 되는데 바이욘 사원, 앙코르 톰, 프레아칸, 닉뽀안, 따 프롬 등의 사원이 그 실례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외교적 능력으로서는 1200년대 초 앙코르 왕국을 항상 노리고 있었던 베트남(당시는 참판 왕국)을 점령하였으며 저 멀리 태국 북부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나갔다고 한다. 그런 흔적은 라오스의 비엔티안에서도 그의 비문이 발견 될 정도라고 하니 그 당시의 앙코르 제국의 영화와 힘을 상상할 수 있겠다. 자야바르만 7세는 탁월한 군사력과 정치력, 그리고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일치시키며 신격화시킬 정도로 능력있는 왕이었으며 앙코르 왕국을 번영시킨 위대한 왕으로 남아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시 바이욘 건설 직후에는 황금빛으로 찬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앙코르의 유적지가 그렇하듯이 이 바이욘 사원도 어떤 목적으로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이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는데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이욘사원은 크메르 우주론의 메루산을 상징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처음 바이욘을 대하면 네면에 관음보살상이 있는 이 사원에 대하여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곳에 그렇게 큰 돌로서 관세음보살상을 만들어 놓은 이유를 묻는다면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사람들은 바이욘 사원의 관세음보살상의 미소를 '앙코르의 미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자상


바이욘 사원의 전면


압사라(apsara) 여인상

상의는 입지 않고 보석으로 장식을 하였다. 원래 크메를 사람들은 상의를 입지 않았으며, 그 대신 X자로 끈을 메어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압사라 춤을 추는 무희




압사라 여인상
이와 비슷한 여인상이 많다.




바이욘 사원의 회랑에는 3층으로 벽화를 조각해 놓았으며, 그중 1층에는 전쟁 장면을 조각하고 있다.
머리 모양으로 보아 참족(태국인)이다.


가장 높은 지위의 장군은 코끼리를 타고, 그 다음은 말을 타고 일반 병사는 도보이다.


장군의 서열은 日傘(양산)의 숫자로 판단할 수 있다.


돌을 먼저 쌓은 후에 조각하였다.




소가 끄는 수레바퀴의 살이 많은 것을 보면 그 시대의 과학기술의 발달을 엿볼 수 있다.
사진의 좌하단에는 부인이 전쟁에 참여하려는 남편을 만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각의 하단부에 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에 참여하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 자라를 가져 가는 부인과 그 자라가 남편의 궁둥이를 몰어서 남편이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기리를 탄 장군
귀가 긴 것을 보아 크메를(캄보디아) 사람이다.




수중전을 보여 주고 있다.


배에서 활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낳는 모습 - 오른 쪽의 사람이 산파이다.


왼 손으로 남편의 시선을 따 돌리고 오른 손으로 그 남자의 부인의 손을 잡고 키스하고 있다.


남쪽 회랑


사면상





사면상
54개의 사면상이 제작되었으나 현재 37개 만이 남아 있다.




앙코르 톰의 바이욘 사원을 보고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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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이런 색으로 쓴 글은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