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국     ( U n i t e d     K i n g d o m )


소개 지리 사람 정부 경제 통신 교통 군사 국제 문제 기타
이 자료는 CIA FACTBOOK (최종 수정일: 2006년 10월 17일)를 기준하여 작성됨.





국기를 클릭하면
설명과 함께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소 개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배경: 19세기의 강력한 산업 및 해양 대국으로서, 대영국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은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문학과 과학의 진보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절정기 때에는 대영 제국은 전 지구 표면의 4분의 1을 망라하기도 했다.
20세기 전반의 두번의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심각하게 그 위력이 감퇴되었음을 보게 되었으며 아일랜드 공화국은 연방을 탈퇴하였다. 후반기에는 제국의 붕괴를 보게 되었으며 영국은 현대적이고 번영하는 유럽 국가로서 재건하게 되었다. 유엔 안보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 중의 하나로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설국의 하나로서, 영연방의 회원국으로서, 영국은 외교정책에서 세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영국은 현재 유럽 대륙과의 통합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서 영국은 당분간은 경제 통화 동맹(EMU)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헌법 개혁도 영국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스코틀랜드 의회, 웨일즈 의회, 및 북 아일랜드 의회가 1999년에 설립되었으나, 북 아일랜드 의회는 평화과정에 관한 논쟁으로 보류되었다.
역사:

기원전 5세기 이전, 선사시대 영국의 역사에 관한 내용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스토운헨지(Stone-henge)와 같은 유적을 통해 볼 때 당시 원주민들이 상당히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경 대륙으로부터 켈트족(the Celts)이 이주해 와 철기문명을 꽃피웠고, 기원전 54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가 영국반도를 원정하여 로마제국으로 합병시킬 기반을 닦았다. 기원후 43년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는 본격적으로 영국 정복에 나서, 지금의 런던과 콜체스터(Colchester)에 군사기지를 세웠으며, 기원후 85년 영국의 남부지역을 완전히 합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고 도로망이 확장되는 등 영국의 문명은 큰 발전과 변화를 거듭했다.

5세기 말엽, 앵글로색슨족을 포함하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영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따라서 원주민인 켈트족은 웨일즈 지역으로 이주하고 지금의 잉글랜드 지역에는 게르만족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8세기와 9세기에 걸쳐 바이킹족(북유럽족속)의 침입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결국 1066년 노르만디공 월리엄(William)이 영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중세봉건제도를 도입하여 통치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 통치 당시 이미 기독교화 된 영국은 중세기 동안 기독교적 문명과 사회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1171년 영국은 아일랜드를 침공하여 정복하였으나, 수많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1215년 귀족들은 왕의 통치권을 제약하는 대헌장(Magna Carta)을 공포하기도 하였다. 대헌장 발표 후 귀족들을 중심으로 의회제도가 발전되기 시작하였으며, 1337년 시작된 프랑스와의 백년전쟁 그리고 흑사병의 유행 등으로 중세봉건제도가 몰락하고, 상인과 장인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4, 5세기 동안의 경제적, 문화적 변화는 영국 자본주의의 기반을 닦았고, 장미전쟁 이후 왕실과 귀족세력이 약화되자 1485년 튜더가문(The Tutor Family)이 왕실을 계승하고 근대 입헌군주제로의 새로운 발전을 시작하였다.

튜더왕조의 통치 기간 동안(1485-1603) 영국은 종교개혁을 통한 영국 성공회의 확립, 그리고 문예부흥 등 긍정적인 발전을 겪었고, 전기 스튜어트 왕조(1603-1649) 기간에는 명예혁명 등을 통한 시민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발전의 기반을 닦았다. 튜더왕조가 복고된 후(1660), 5-60년간 비교적 안정기를 맞이하면서 스코틀랜드와의 연합하였다(1707). 18세기 이후 하노버왕조 통치기간(1714-1901) 동안 영국은 산업혁명과 민주주의의 발전, 식민지 건설 등으로 세계 최대 강국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특히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여왕시대에는 영국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1910년 이후 현재의 윈저가문(Windsor)이 왕조를 계승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제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영 제국의 면모를 과시하는 듯했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과 소련의 등장으로 인해 최강국의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서구 선진 산업국의 일원으로서 세계 정치, 경제, 학문, 예술, 과학기술의 중심국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 담당하고 있다.
('영국에 관하여'에서 발췌)

자세한 역사를 보려면 다음 사이트를 참조하라.

대한민국과의    
관계:

1. 개 요

    ο 1883년 한·영 우호통상 항해조약(Treaty of Friendship, Commerce and Navigation) 조인 후

    ο 1884년 4월 서울에 영국 총영사관이 설치되었으며, 1910년 한.일합방 후에도 총영사관은 계속 유지됨. 그후 1949.1.한.영간에 국교가 재수립되었으며, 영국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함.

    ο 한국전쟁시 1950년 9월 영국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참전 연인원 : 육군 4만, 해군 1만7천), 1951년에는 영국군이 영연방군으로 통합됨(경기도 가평에 영연방 참전 기념비 건립).

    ο 한국전쟁중 영국군은 글로스터연대의 격전(1951.4.22∼24간)등 큰 전공을 남겼으며, 다수의 사상자를 냄(전사자 686명, 부상자 2,498명, 실종자 1,102명). < 글로스터연대의 격전 >

    ο 한국전쟁중 1951.4.22∼24간 영 참전군 글로스터연대 1대대 9백여명이 춘계 대공세를 편 중공군 3만명에 포위되어 임진강 유역인 경기도 파주군 설마리(영국은 이곳을 Gloucester Valley 라고 부름)에서 전투를 벌였음. 이 전투는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임진강선에서 3일간이나 저지하여 후퇴한 유엔군이 전열을 재정비, 반격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함. < 한국전참전 전몰용사 추모 비 건립 >

    ο 87.3.11 영국 한국전 참전 용사회의 주관하에 St.Paul Cathedral에서 한국전 참전 전몰용사 추모비 제막식 행사가 엘리자베드여왕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음(동 추모비 석재는 우리 정부가 기증)

    ο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영국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왔으며, UN등 각종 국제회의에서도 우리 입장을 계속 지지해 왔음.

2. 대한반도 기본정책

    ο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지지

    ο 한국의 높은 교육수준, 경제발전 등을 높이 평가하며, 교역.투자분야에서의 주요한 협력 대상국으로 인식

이상 '주영국 대한민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발췌 (2006년 10월 19일)


양국관계

서두

한국에 대한 영국의 관심은 17 세기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과 한국의 부(富)에 대한 명성은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유럽에 알려졌고 영국에 처음 알려진 것은 1598-1600 년 사이에 출판된 리차드 해클루이트의 '영국의 주요 항해와 발견'을 통해서다.
영국의 관심은 18 세기 말에 다시 고조되었다. 중국과의 교역의 증가는 동아시아 해역을 항해하는 서양 선박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측량 작업의 필요성을 야기시켰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윌리엄 브로튼 선장은 1794 년부터 1798 년까지 '프로비던스'호를 타고 북태평양과 아시아 해역을 항해했으며 항해 도중 1797년 10월과 11월 한국 해안에 도착했다. 브로튼 선함과 그의 부하들은 부산에 상륙했다.
1832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기 위해 중국의 북쪽 해안을 따라 '로드 애머스트'호를 보냈다. 한국을 방문한 이 선박에는 한국에 몇 권의 성경을 보급한 찰스(또는 칼) 거츨라프 목사가 타고 있었다. 1870년대에는 중국 북부에 파견된 선교사 존 로스 목사가 복음서를 최초로 한글로 번역하기도 했다.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영국 외교관은 나가사키 주재 영사였던 조지프 롱포드로 그가 방문한 해는 1875 년이었다. 롱포드도 그 전의 방문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로부터 적대적 대접을 받았다.

1882-1883 조약 체결

1882년 영국은 중국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윌리스 해군 중장을 한국에 파견했다. 필요한 경우 조약을 맺기 위해 협상할 수 있는 재량이 그에게 부여되었다. 1882년 윌리스 중장은 인천에서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윌리스의 조약은 영국 내에서 극심한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처음 그들은 윌리스의 조약을 수정하려고 했지만 곧 영국의 목표를 달성하고 반대 의견을 참작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조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해 졌다. 1883년 11월 영국과 독일이 한국과 공동 협상에 들어갔다. 주중 공사 파크스가 서울에 도착하여 파크스의 오랜 친구였던 요코하마 주재 독일 총영사 헤르 차페와 합류했다. 협상은 어려웠지만 마침내 1883년 11월 26일 경복궁에서 새로운 우정, 통상, 항해 조약에 서명하게 되었다.

1884-1890 조약 이행

파크스는 자신이 북경에 계속 주재하면서 주한 영국 공사도 겸임하고 일시적으로나마 한국에 영사관도 주재시킬 것을 제안했다. W G 애스톤이 영사관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1884년 5월 퇴락한 전의 왕궁이 있는 부근인 정동에 약간의 토지 구입 계약을 맺었다. 이 토지는 1,200 멕시코 달러, 영화(英貨) 약 225 파운드로 구입되어 현재는 주한 영국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 한국식으로 공관과 관저가 세워졌고 영국 외교 사절단이 업무를 시작했다.

1885-1887 해밀톤 항 - 거문도

1885년 영국은 러시아가 한국 북동부 해안의 항구를 점령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해밀톤 항(거문도)을 점령키로 결정했다. 영국 해군은 1885년 4월 내각의 지시에 따라 3척의 군함을 해밀톤 항에 파견했지만 처음에는 이곳에 영국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한국 정부와 협상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중국과 일본도 이 문제가 자국의 이익에 직접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에도 통보하지 않았다. 그러나 1886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인해 발생된 영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이 완화되었을 때 영국은 해밀톤 항에서의 철수를 결정했다.

1887-1890 관계 강화

1888년 북경 주재 공사 겸 서울 주재 공사는 서울과 제물포를 정식 주재지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에 따라 1890년과 91년 서울 부지에 있던 대부분의 낡은 건물들을 헐고 정통 중국 해안식 영국 공관과 관저들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1890년대에 한국을 방문한 주요한 영국인들은 유명한 여성 여행가 비숍 여사와 나중에 작위를 받은 장래의 커즌 경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한국에 관한 귀중한 저서를 남겼으며 이 두 저서들은 현재 한글로 번역되어 아직도 인용되고 있다.
1890 년대에는 한국 정부가 고용한 영국인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맨 처음 고용된 사람들 중에는 1883년부터 85년까지 대한제국 외무성의 독일인 고문 P G 폰 뮐렌도르프의 비서로 일한 W 두 플론 허친슨도 있었다. 1880 년대 후기에 잠시 동안 영국인 기술자가 경복궁의 전기 조명을 담당한 적이 있다. 1896년 전 샹하이 경찰이었던 스트리플링이 새로 조직된 한국 경찰국의 고문이 되었다. 영국 해병대 콜웰 중위가 한국군에게 훈련을 가르쳤으며 그와 성공회 평수사 한 명이 최초의 한국 축구선수들을 훈련시켰다.

1900-1910 영일 동맹과 일본의 조선 강점

1898년 북경 주재 영국 공사관과 서울 영사관 사이의 관계가 끊어졌다. 총영사 존 조던은 처음에는 대리 공사로 임명되었다가 1901년 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직무는 1905년까지만 존속되었다. 1902년 영일 동맹이 체결되었다. 영국의 위치는 다른 국가들의 위치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2차 영일 동맹으로 한일 합방을 묵인한 일이 한국인들의 원성을 샀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1905년 이후 일어난 변화를 수용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몇 사람들 중 가장 저명했던 사람은 영국 기자 어니스트 배설이었다. 배설은 독립적으로 신문을 창간했는데 이 신문은 처음에는 한영 2개 국어로 발간되었다. 배설은 곧 반일 입장을 취했다. 일본 당국은 한국에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던 영사관 법정을 통해 그를 교정하려고 노력했다. 배설은 유죄 선고를 받고 마침내 샹하이 교도소에 투옥되었다. 그는 석방되자 한국에 돌아왔고 1909년 사망했다.

1910-1941 일본 강점 시대

1910년 후에는 변화가 있었다.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은 이 식민지를 다른 국가들과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영국의 공식적 위치는 1910년 이후 축소되었을 수도 있지만 공식적 관심은 그렇지 않았다. 1905년 이후 일본의 한국 통치를 받아들인 영국 정부는 일본이 자국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었던 시기에 있었던 일본의 잔학 행위에 대한 주장을 공식적으로는 심각하게 반박하지 않았다. 그것을 일본 식민지 지배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9년 3.1 운동 때 영국 정부는 일본의 행위에 대해 훨씬 더 비판적이었다. 영국 정부는 일본의 식민 정치를 비난하는 고발장을 작성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외국 기업들의 운영이 더욱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대세를 이루고 있던 선교 활동은 식민지 시대 동안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

1945-1950 영국의 재등장

한국에 대한 영국의 역할은 독립 전 장기간의 신탁 통치에 반대하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한국이 "적당한 시기에" 자유 독립 국가가 된다는 언급이 연합국의 입장에 포함된 것은 영국의 주장 때문이었다.
1946년부터 50년까지는 영국의 외교 사절단이 한국에 점차 재확립된 시기이다. 1948년 대한민국(ROK)이 수립된 후 영국 공사관이 다시 주재하게 되었고 당시의 총영사 비비언 홀트 대위가 1949년 3월 최초의 공사가 되었다. 한국 공사관도 런던에 개관되었다.

1950-1953 한국 전쟁

1950년 6월 한국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 정부는 북한의 행위를 즉각 비난했다. 영국은 미군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한국에 파견했다. 8만 7,000명의 영국군이 한국전에 참전, 1,000명 이상의 영국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군이 참여한 많은 전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51년 4월 영국 제29 보병 여단이 싸운 '임진강 전투'다. 영국 공사 비비언 홀트는 전쟁이 처음 발발했을 때 서울에 남아있는 것이 그의 의무이며 외교관으로서의 위치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고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1950년 7월 홀트와 다른 외국인들은 북한군에 억류되어 한반도 북쪽 끝까지 유명한 죽음의 행진에 끌려갔다. 1953년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홀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는 1953년 4월 석방되었다.

1953-2005 발전하는 한영 관계

양국의 외교 사절단을 1957년 대사관으로 격상시킨 일은 새로운 관계 수립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가 있다. 주한 영국 대사관은 2007년 축하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1973년 주한 영국 문화원이 서울에 설립되면서 양국 관계에 새로운 차원이 부가되었다. 1950년대부터 1890년에 건축된 두 채의 건물들이 주한 영국대사관 구내의 중심부에 남아 있고 주한영국대사도 여전히 오래된 관저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대사관에서는 세 번의 주요 개축 공사가 있었는데 1992년 현대식 대사관 건물을 건축한 마지막 공사로 개축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이 기간 동안 양국간의 문화적 관계도 더 긴밀해졌다. 영국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의 수는 한국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다. 1990년대에는 유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2005년에는 1만 7,000명을 넘어섰다. 매년 많은 한국 학생들이 영국 정부가 수여하는 쉬브닝 장학금(영국 외무성 장학금)의 혜택을 입고 있다. 이 장학금은 다양한 분야들에서 공부하는 대학원 과정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지원한다.

양국 관계의 획기적 사건은 1999년 4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에딘버러공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 것이다. 여왕 부처는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 의전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공식 영접을 받았으며 광범위한 행사들로 짜여진 일정을 보냈다. 이채로웠던 행사로는 여왕이 안동 지방의 하회 마을을 방문했던 행사가 있다. 안동 지방에서 여왕은 한국 전통 문화의 여러 가지 모습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여왕 부처는 서울에서 다수의 한영 기업 지도자들을 접견하기도 했다. 양국 관계의 초점은 이제 점차 경제적/사업적인 관계로 옮아가고 있다. 1982년 영국 상공회의소가 서울에 설립되었다. 1964년에는 양국간의 무역액이 1,00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05년에는 양국간의 무역액이 84억 달러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는 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영국에 투자했다.

2004년 12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초청을 받아 영국을 방문했다. 이 방문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한 행사로서 점차 성숙해 가는 양국 관계를 반영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영국 여왕은 국빈 방문 초청을 매년 두 번밖에 하지 않는다.

이상 '주대한민국 영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발췌 (2006년 10월 19일)



지 리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위치: 서 유럽, 북대서양과 북해 사이에 있는 섬나라, 아일랜드의 6분의 1(북부) 포함. 프랑스의 서북쪽
면적: 총: 244,820 km2
육지: 241,590 km2
물: 3,230 km2
: Rockall 및 Shetland 제도 포함
상대적 면적: 한반도 면적: 219,020 km2         남한 면적: 98,480 km2
경기도 면적: 10,200 km2          서울 면적: 605.4 km2
육지 경계: 360 km
접경국: 아일랜드 360 km
해안선: 12,429 km
해양 주장: 영해: 12 nm
배타적 경제수역: 200 nm
대륙붕: 대륙붕 정의 관례에 따르거나 또는 국경에 대한 합의에 따름
기후: 온대; 북대서양 해류 상 주로 남서풍이 불어 온화하다; 일년 중 절반 이상이 흐리다.
지형: 대부분 울퉁불퉁하고 낮은 산; 동부와 남동부에 완만하게 기복하는 평원
고도 한계: 가장 낮은 곳: The Fens -4 m
가장 높은 곳: Ben Nevis 1,343 m
천연 자원: 석탄, 석유, 천연가스, 철광, 납, 아연, 금, 주석, 석회암, 소금, 점토, 석회 가루, 석고, 칼륨, 실리카 모래, 점판암, 경작가능 토지
토지 이용: 경작가능토지: 23.23%
영구농지: 0.2%
기타: 76.57% (2005년)
관개 토지: 1,700 km2
자연 재해: 겨울의 폭풍, 홍수
환경 -            
현재의 문제:

온실가스 배출 저감 노력 계속 (1990년의 수준에서 12.5% 저감하는 교토의정서 목표를 달성하였으며, 법적 규제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와 2010년까지 국내 목표 20% 삭감하려는 움직임);
2005년까지 정부는 토지 매립지에 버리는 산업 및 상업 폐기물의 양을 1998년의 85%로 줄이고 가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적어도 25%를 리사이클하거나 퇴비로 만들고, 2015년까지는 33%로 한다는 목표;
1998-1999년과 1999-2000년 사이에 가정 폐기물의 리사이클링은 8.8%에서 10.3%로 증가.
환경 -            
국제협약:

조약 회원국:
    공기오염, 공기오염-질소산화물, 공기오염-황 94, 공기오염-휘발성 유기화합물, 남극-환경 의정서, 남극-해양 생물 자원, 남극 바다표범, 남극 조약, 생물 다양성, 기후 변화, 기후 변화-교토 의정서, 사막화, 멸종 위기의 생물, 환경 변경, 위험한 폐기물, 해양법, 해양 불법 투기, 해양 생명 보존, 오존층 보호, 선박 오염, 열대목재 83, 열대목재 94, 습지, 포경조약
서명했으나 비준하지 않은 조약: 공기오염-지속성 유기 오염물질
지리 - 주: 중요한 북대서양 해양항로에 근접한 위치; 프랑스로부터 35 km밖에 떠어지지 않으며, 영국해협 아래 터널로 연결됨; 심하게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갖고 있어서 어느 곳도 조수에서 125 km이상 떨어져 있지 않다.


사 람 영 국   (United Kingdom) 처음으로
인구: 60,609,153 명 (2006년 7월 추정)
연령 구조: 0-14세: 17.5% (남자 5,417,663 명 / 여자 5,161,714 명)
15-64세: 66.8% (남자 20,476,571 명 / 여자 19,988,959 명)
65세 이상: 15.8% (남자 4,087,020 명 / 여자 5,477,226 명) (2006년 추정)
중간연령: 전체: 39.3 세
남자: 38.2 세
여자: 40.4 세 (2006년 추정)
인구증가율: 0.28% (2006년 추정)
출생률: 인구 1000명당 10.71 명 출생 (2006년 추정)
사망률: 인구 1000명당 10.13 명 사망 (2006년 추정)
순 이민율: 인구 1000명당 2.18 명 이민(들어옴) (2006년 추정)
성비: 출생시: 남자 / 여자 : 1.05
15세 미만: 남자 / 여자 : 1.05
15-64세: 남자 / 여자 : 1.02
65세 이상: 남자 / 여자 : 0.75
전체 인구: 남자 / 여자 : 0.98 (2006년 추정)
영아사망률: 전체: 살아서 출생한 영아 1000명당 5.08 명 사망
남자: 살아서 출생한 영아 1000명당 5.67 명 사망
여자: 살아서 출생한 영아 1000명당 4.47 명 사망 (2006년 추정)
출생시 기대수명: 전체: 78.54 세
남자: 76.09 세
여자: 81.13 세 (2006년 추정)
총 출산율: 여자 1명당 1.66 명의 아이 출생 (2006년 추정)
HIV/AIDS -    
발병율:
0.2% (2001년 추정)
HIV/AIDS -    
보균자수:
51,000 명 (2001년 추정)
HIV/AIDS -    
사망자수:
500 명 미만 (2003년 추정)
인종: 백인 (그 중 잉글랜드인 83.6%, 스코틀랜드인 8.6%, 웨일즈인 4.9%, 북 아일랜드인 2.9%) 92.1%, 흑인 2%, 인도인 1.8%, 파키스탄인 1.3%, 혼혈 1.2%, 기타 1.6% (2001년 인구조사)
종교: 기독교도 (성공회교도, 로마 가톨릭 교도, 장로교도, 감리교도) 71.6%, 이슬람교도 2.7%, 힌두교도 1%, 기타 1.6%, 불명 또는 무종교 23.1% (2001년 인구조사)
언어: 영어, 웨일즈어 (웨일스 인구의 약 26%), 스코틀랜드 식의 게일어 (스코틀랜드에 약 60,000 명)
문자 해독: 정의: 15세 이상으로 5년 이상의 학교 교육을 수료함
전체 인구: 99%
       남자: 99%
       여자: 99% (2003년 추정)


정 부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국가명: 공식 명칭: 대영국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간단히: United Kingdom (UK; 영국)
국가 기호: GBR
정부 형태: 입헌 군주국
수도: 런던 (London)
표준 시간: UTC 0
일광 절약 시간: 실시 (+1 시간 3월 마지막 일요일에서 10월 마지막 일요일까지)     (우리나라는 UTC + 9)
행정 구역: 잉글랜드: 47개 자치 도시(borough), 36개 주(counties), 29개 런던 자치 도시, 12개 시와 자치 도시, 10개 지구(districts), 12개 시(cities), 3개 왕실 자치 도시

스코틀랜드: 32개 공립 지역(council areas)

웨일즈: 11개 주(county) 자치 도시, 9개 주(counties), 2개 시와 주(cities and counties)

북 아일랜드: 24개 지구, 2 개 시, 6개 주(counties)

속령지: 몬트세라트, 버뮤다, 사우스조지아 및 남 샌드위치 제도, 세인트헬레나 및 어센션 섬, 안길라, 영국령 버진군도, 영국령 인도양 영토, 지브랄타, 케이만군도, 터크스·카이코스군도, 포클랜드 제도, 피트케언군도
독립일: 잉글랜드는 10세기 이래 통일된 국가로 존재해 왔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연합은 1284년에 루드란 규약(Statute of Rhuddlan)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1536년에 연합법(Act of Union)에 의하여 공식하되었다; 1707년에 또 다른 연합법에 의하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으로 항구적으로 합치기로 합의하였다;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의회 연합이 수행되었으며,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란 이름이 채택되었다; 1921년에 앵글로-아일랜드의 협약에 의하여 아일랜드의 분리가 공식하되었다; 6개의 북 아일랜드의 주(counties)가 북 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대영제국의 일부로 잔류하여 1927년에 현재의 국가 명칭인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가 채택되었다
국경일: 특정 공휴일이 없음
헌법: 불문 헌법, 부분적으로 법령(statutes), 일부는 관습법 및 관례
법률 제도: 고대 로마법과 현대 대륙법의 영향을 가미한 관습법 전통; 1998년의 인권법 하에 의회의 입법활동을 사법부에서 법률적 검토를 하나 강제성은 없다;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강제적 재판권을 조건부로 수용
투표권: 18 세 이상, 전체
행정부: 국가원수: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52년 2월 6일 이후)
정부수반: 수상 Anthony (Tony) BLAIR (1997년 5월 2일 이후)
내각: 내각의 장관은 수상가 임명한다
선거: 없음, 왕권은 세습적임.
보통 의회 선거 후에 다수당 또는 다수당 연합의지도자가 수상이 된다.
입법부: 양원제 국회는 상원 (약 500 명의 종신직 의원, 92석의 세습직 귀족, 및 26명의 성직자로 구성)과 하원 (2005년 선거 이래 646 석, 의원은 보통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의회가 해산되지 않으면 5년이다)으로 구성된다.
선거:
    상원 - 선거 없음. : 1999년 상원법에 따라 92석의 세습 귀족 중에 누가 남을가에 대한 선거가 있었음;
              세습직 귀족의 공석이 생길 경우에만 선가가 있음
    하원 - 최종 선거일 2005년 5월 5일 (다음 선거 예정일 2010년 5월)
선거 결과: 하원 -
    정당별 득표율 - 노동당 35.2%, 보수당 32.3%, 자유민주당 22%, 기타 10.5%;
    정당별 의석수 - La노동당bor 356, 보수당 197, 자유민주당 62, 기타 31;
    - 2006년 2월 10일 현재 하원의 의석수: 노동당 353, 보수당 196, 자유민주당 63, 스코틀랜드국민당/웨일스당 9, 민주통일당 9, 신페인당 5 (그러나 투표할 수 없음), 기타 11
: 1998년 북 아일랜드 의회에 대한 선거가 있었다(런던으로부터 북 아일랜드로의 권력이전이 1999년 말에야 이루어지며 또 2002년 10월까지 4번이나 보류되었던 것에 대한 현존 정당간의 논쟁 때문에);
1999년에 새로운 스코틀랜드 의회와 새로운 웨일스 의회에 대한 선거가 있었다
사법부: 대법원(House of Lords; 최고 항소 법원; 몇 개의 보통 항소 법관은 종신직으로 국왕이 임명한다); 잉글랜드, 웨일즈 및 북 아일랜드의 대법원 (항소 법원, 고등법원, 형사 법원으로 구성); 스코틀랜드의 치안 법원(Court of Session)와 사법 법원(Court of the Justiciary)
정당 및 지도자: 보수 및 통일당 [David CAMERON];
민주통일당 (북 아일랜드) [Rev. Ian PAISLEY];
노동당 [Anthony (Tony) BLAIR];
자유민주당 [Sir Menzies CAMPBELL];
웨일즈당 (Plaid Cymru) [Dafydd IWAN];
스코틀랜드국민당 (SNP) [Alex SALMOND];
신페인당 (북 아일랜드) [Gerry ADAMS];
사회민주 및 노동당 (SDLP) (북 아일랜드) [Mark DURKAN];
얼스터 통일당 (북 아일랜드) [Sir Reg EMPEY]
정치적 압력단체    
및 지도자:

핵군축운동;
영국산업연합;
전국 농민조합;
영국노동조합회의
국제기구 참여: AfDB, Arctic Council (업저버), AsDB, 호주 그룹, BIS, C, CBSS (업저버), CDB, CE, CERN, EAPC, EBRD, EIB, ESA, EU, FAO, G- 5, G- 7, G- 8, G-10, IADB, IAEA, IBRD, ICAO, ICC, ICCt, ICFTU, ICRM, IDA, IEA, IFAD, IFC, IFRCS, IHO, ILO, IMF, IMO, 인터폴, IOC, IOM, IPU, ISO, ITU, MIGA, MONUC, NAM (게스트), NATO, NEA, NSG, OAS (업저버), OECD, OPCW, OSCE, 파리 클럽, PCA, PIF (파트너), UN, UN 안전보장이사회, UNAMSIL, UNCTAD, UNESCO, UNFICYP, UNHCR, UNIDO, UNMIL, UNMIS, UNMOVIC, UNOMIG, UNRWA, UPU, WCO, WEU, WHO, WIPO, WMO, WTO, ZC

약어에 관해서는 약어 해설을 참조하라.

주 대한민국        
영국대사관: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4번지 태평로 40 [100-120]
전화: (02) 3210 5500
FAX: (02) 725-1738
E_mail: bembassy@uk.or.kr
홈페이지: http://www.britishembassy.or.kr/
주 영국              
대한민국대사관:

주소: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60, Buckingham Gate
        London, SW1E 6AJ
        U.K

전화: 대표전화 : 44-(0)20-7227-5500
        영 사 과 : 44-(0)20-7227-5505∼7

FAX: 대표 : 44-(0)20-7227-5503
        영 사 과 : 44-(0)20-7227-5504
        정 무 과 : 44-(0)20-7227-5548
        경 제 과 : 44-(0)20-7227-5523

E_mail: koreanembinuk@mofat.go.kr
홈페이지: http://www.mofat.go.kr/ek/ek_a003/ek_ukuk/ek_03.jsp


국기:       처음으로

국기에 대한 설명:

    푸른 색 바탕에 흰색으로 둘러 싸인 붉은 세인트 조지(잉글랜드의 수호성인) 십자가와 세인트 패트릭(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의 대각선 십자가가 세인트 앤드류(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의 흰색 대각선 십자가와 중첩되어 있다;
    유니언 국기라고 알려진 이 국기는 보통 유니언 잭이라고 부른다;
    디자인과 색갈 (특히 푸른 표장)은 연연방의 다른 나라를 포함하여 여러 나라와 그 나라의 주나 도, 그리고 영국의 해외 영토의 기의 기본이 되었다.


경 제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경제 개관: 영국은, 선도적인 교역국이며 재정 중심으로서, 서 유럽의 조 달러 규모의 경제국 5개국 중의 하나이다. 지난 20년간 정부는 공공 소유를 크게 축소하고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확대를 억제하였다. 농업은 집중적이며, 크게 기계화되고, 유럽의 기준으로 효율적이며, 2% 미만의 노동력으로 국가의 식량 수요의 60%를 생산한다. 영국은 다량의 석탄, 천연가스, 및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다;
일차 에너지 생산량은 GDP의 10%를 차지하며,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서비스, 특히 은행, 보험, 및 비즈니스 서비스는 GDP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은 계속 그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다. 2001-03년에 세계적인 하락, 파운드화의 강화, 그리고 '신 경제' 거품의 붕괴로 제조업과 산업이 타격을 받음으로서 GDP 성장은 하강하였다. 2004년에 산출은 3.2%의 성장으로 회복되었으나 2005년에는 다시 1.7%로 떨어졌다. 저 성장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인플레이션, 이자율, 및 실업률은 낮다. 비교적 좋은 경제적 성취는 영국을 유럽의 경제 통화 동맹 (EMU)에 참여하려고 하는 블레어 정부의 노력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비평자들은 경제가 EMU 밖에서 잘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여론 조사 결과 영국인의 대다수가 유로화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더 높은 새금과 공공 적자의 확대를 감수하고 교육, 교통, 및 건강 서비스의 개선에 속도를 증가시키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구매력평가):
1조 8,300억 $ (2005년 추정)
GDP    
공식환율기준:
2조 2,280억 $ (2005년 추정)
GDP    
실질성장율:
1.8% (2005년 추정)
1인당 GDP    
(구매력평가):
30,000 $ (2005년 추정)
GDP -            
산업별 구성:

농업: 0.5%
산업: 23.7%
서비스업 75.8% (2005년 추정)
노동력: 3,007만 명 (2005년 추정)
노동력 - 직업별: >농업: 1.5%
산업: 19.1%
서비스업 79.5% (2004년)
실업율: 4.7% (2005년 추정)
빈곤층 인구비율: 17% (2002년 추정)
가구당 소득    
또는 소비구성:

최저 10%: 2.1%
최고 10%: 28.5% (1999년)
가족소득분포    
Gini지수:
36.8 (1999년)
인플레이션율    
(소비자 가격):
2.1% (2005년 추정)
투자 (총 고정): GDP의 16.6% (2005년 추정)
정부 예산: 세입: 8,814억 $
세출: 9,510억 $, 미지의 자본 지출 포함 (2005년 추정)
공공 부채: GDP의 43.1% (2005년 추정)
농업 - 생산물: 곡물, 유지종자, 감자, 채소;
소, 양, 닭;
물고기
산업: 공작기계, 전기 동력 장비, 자동화 장비, 철도 장비, 조선, 항공기, 차량 및 부품, 전자 및 통신 장비, 금속, 화학품, 석탄, 석유, 종이 및 종이 제품, 음식 가공, 섬유, 의류, 기타 소비 제품
산업생산증가율: -1.9% (2005년 추정)
전기 - 생산: 3,699 억 kWh (2003년)
전기 - 소비: 3,461 억 kWh (2003년)
전기 - 수출: 30 억 kWh (2003년)
전기 - 수입: 51 억 kWh (2003년)
석유 - 생산: 239만 2,000 바랠/일 (2003년 추정)
석유 - 소비: 172만 2,000 바랠/일 (2003년 추정)
석유 - 수출: 149만 8,000 바랠/일 (2001년)
석유 - 수입: 108만 4,000 바랠/일 (2003년)
석유 - 확인매장량: 45 억 바랠 (2004년 12월 31일)
천연가스 - 생산: 1,028억 m3 (2004년)
천연가스 - 소비: 951억 5,000만 m3 (2003년 추정)
천연가스 - 수출: 157억 5,000만 m3 (2001년 추정)
천연가스 - 수입: 27억 m3 (2001년 추정)
천연가스 -          
확인매장량:
6,286억 m3 (2004년 12월 31일)
경상 수지: -576억 1,000만 $ (2005년 추정)
수출: 3,727억 $ f.o.b. (2005년 추정)
수출 - 품목: 제조상품, 연료, 화학품; 식품, 음료, 담배
수출 - 대상국: US 15.1%, 독일 10.5%, 프랑스 8.9%, 아일랜드 7.3%, 네덜란드 5.5%, 벨기에 5%, 스페인 4.4% (2005년)
수입: 4,837억 $ f.o.b. (2005년 추정)
수입 - 품목: 제조상품, 기계류, 연료; 식료품
수입 - 대상국: 독일 12.8%, US 8.7%, 프랑스 7.1%, 네덜란드 6.6%, 중국 5%, 노르웨이 4.7%, 벨기에 4.6%, 이탈리아 4% (2005년)
외환 및 금 보유: 486억 6,000만 $ (2005년 추정)
대외부채: 7조 1,070억 $ (2005년 6월 30일)
경제지원          
제공국:
ODA, 79억 $ (2004년)
통화 (코드): 파운드 (GBP)
환율: 1 USD 당 - GBP 0.55 (2005년), 0.5462 (2004년), 0.6125 (2003년), 0.6672 (2002년), 0.6947 (2001년)
회계연도: 4월 6일 - 4월 5일


통 신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전화 -                
사용중인 회선수:
3,294만 3,000 (2005년)
전화 - 휴대폰: 6,109만 1,000 (2004년)
전화 시스템: 일반 평가: 기술적으로 발달한 국내 및 국제 시스템
국내: 매설 케이블, 마이크로웨이브 무선 중계국, 위성 지구국, 및 광섬유 시스템의 동등 혼합
국제: 40 coaxial submarine cables; 위성 지구국 - 10 Intelsat (7 대서양 및 3 인도양), 1 Inmarsat (대서양 지역), 및 1 Eutelsat; 적어도 8 개의 대형 국제 교환 센터
국제전화번호: 44
라디오 방송국: AM 219, FM 431, 단파 3 (1998년)
텔레비젼방송국: 228 (3,523 중계소 별도) (1995년)
인터넷 국가코드: .uk
인터넷 호스트수: 4,688,307 (2005년)
인터넷 사용자수: 3,78만 명 (2005년)


수 송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비행장: 471 (2006년)
포장 활주로를    
가진 비행장:

총: 334
3,047 m 초과: 8
2,438 - 3,047 m: 33
1,524 - 2,437 m: 149
914 - 1,523 m: 86
914 m 미만: 58 (2006년)
비포장 활주로를    
가진 비행장:

총: 137
2,438 - 3,047 m: 1
1,524 - 2,437 m: 1
914 - 1,523 m: 23
914 m 미만: 112 (2006년)
헬리콥터 비행장: 11 (2006년)
파이프라인: 응축액 370 km; 가스 21,446 km; 액화 석유 가스 59 km; 석유 6,420 km; 석유/가스/물 63 km; 정유제품 4,474 km (2004년)
철도: 총: 17,156 km
표준폭 (1.435-m 게이지): 16,814 km (5,384 km 전기화)
광폭 (1.600-m 게이지): 342 km (북 아일랜드에) (2005년)
도로: 총: 387,674 km
포장: 387,674 km (3,523 km 의 고속도로 포함) (2004년)
수로: 3,200 km (620 km는 상업용으로 이용) (2003년)
상용 선박: 총: 449 척 (1000 GRT 이상) 11,049,317 GRT/11,731,680 DWT
형태별: 벌크선 24, 화물선 54, 화학 탱커 50, 컨테이너선 146, 액화 가스 17, 여객선 9, 여객선/화물선 65, 석유 탱커 33, 냉동 화물선 17, 차량이 직접 승하선할 수 있는 페리선 (On/roll off) 26, 차량 수송선 8
외국인 소유선박: 215
    (호주 3, 덴마크 46, 핀란드 1, 프랑스 4, 독일 76, 그리스 7, 아일랜드 1, 이탈리아 4, 네덜란드 3, 노르웨이 36, 뉴질랜드 1, 남아공 5, 스페인 1, 스웨덴 15, 스위스 3, 대만 1, 터키 2, US 6)
외국에 등록한 선박: 368
    (알제리 13, 앤티가 바부다 7, 아르헨티나 4, 호주 2, 바하마 69, 바베이도스 5, 벨기에 2, 버뮤다 9, 브라질 1, 브루나이 8, 카보 베르데 1, 케이만군도 10, 키프로스 6, 덴마크 1, 핀란드 1, 프랑스령 남부 및 남극 영토 1, 그루지야 4, 지브랄타 4, 그리스 9, 홍콩 43, 인도 1, 인도네시아 2, 이탈리아 3, 대한민국 2, 라이베리아 41, 몰타 8, 마샬군도 12, 모로코 1, 네덜란드 19,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3, 노르웨이 6, 파나마 37, 파푸아뉴기니 6,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13, 싱가포르 9, 슬로바키아 1, 스페인 1, 태국 2, 통가 1)
(2006년)
항구 및 승선장: Hound Point, Immingham, Milford Haven, Liverpool, London, Southampton, Sullom Voe, Teesport


군 사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군 구성: 육군, 왕립 해군(해병대 포함), 왕립 공군
병역 의무 및 연령: 16세 이상 지원병; 여성도 지상 전투와 특수 해군 지위를 제외하고 군 복무 (2004년)
군 가용인력: 18-49세 남자: 14,607,724 명
18-49세 여자: 14,028,738 명 (2005년 추정)
군 적합인력: 18-49세 남자: 12,046,268 명
18-49세 여자: 11,555,893 명 (2005년 추정)
군사비 지출액: 428억 3,650만 $ (2003년)
군사비 지출    
GDP 비율:
GDP의 2.4% (2003년)
군 현역병수: 187,970 명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2006 and Jaffa Center of Strategic Studies)


국제 문제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국제 분쟁: 2002년에 지브랄타 주민들이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분할 주권" 합의를 배척하는 국민투표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였다;
지브랄타 정부는 두 나라 사이의 회담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기를 주장하였다;
스페인은 지브랄타에 더 많은 자치권을 허용하려는 영국의 계획을 승인하지 않는다;
모리셔스와 세이셀은 차고스 제도 (영국령 인도양 영토), 및 1965년에 퇴거한 이래 이전의 주민에 대하여 주장한다;
대부분의 차고시안들(Chagossians; Ilois라고도 함)은 모리셔스에 살고 있으며, 또 2001년에 영국 시민권이 허용되었으나 영국 본토 거주의 권리는 없다;
영국은 포클랜드제도 (이슬라스 말비나스)와 남 조지아 섬 그리고 남 샌드위치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아르헨티나가 요구하는 주권 회담을 거부하였다;
남극(영국령 남극 영토)에서의 영국의 영토 주장은 아르헨티나의 주장과 중첩되며 또 칠레의 주장과 부분적으로 중첩된다;
아이슬란드, 영국, 및 아일랜드는 페로군도의 대륙붕을 200 nm 이상 확대하는 덴마크의 주장을 문제삼고 있다
불법 마약: 합성 마약 및 합성 전구체 화학품의 한정된 양의 생산국;
서남 아시아의 헤로인, 라틴 아메리카의 코카인, 및 합성 마약 주요 소비국;
금전 세탁의 센터


기 타 영 국   (United Kingdom)처음으로
전압 및 주파수: 230 V - 50 Hz
전기 플러그 형식: D 형형식 기호를 클릭하면 그림을 볼 수 있음
    [대한민국 : A 형]
관광정보: http://www.visitbritain.com/
특기사항: 1950년 - 1953년 한국전쟁 중 유엔 파병국 16개국(그리스, 남아공화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룸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에티오피아, 영국,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호주) 중의 하나
참고사이트: 미국 CIA의 THE WORLD FACTBOOK (최종 수정일 2006년 10월 17일)
Wikipedia - List of countries by military expenditures
Wikipedia - List of countries by number of active troops
국가정보원 세계각국소개
외교통상부 재외공관
영국 (UNITED KINGDOM)


    '나라정보'로 돌아가기